나는 회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문득, 그게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지 깨닳았다.

 

최근 나와 생각이 좀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되었고,

맞추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맞추는건 불가능하고,

나를 괴롭히는 일이며,

나의 행복한 일상과 발전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깨닳았다.

내가 왜 그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지?

내가 왜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그 사람에게 맞추어 나가느라, 나는 그 사람이 미워졌는데?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그냥 나로 살아가면 된다.

그래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어제 누군가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을 보였다.

원래 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종일, 오늘까지도 마음이 상해 있다.

 

내가 만만한가?

내가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나?

자기가 짜증이 난다고 막 짜증을 내도 되는 사람이면 만만한 사람 맞지?

나는 왜 만만하게 보이지?

너무 친절한가?

 

온갖 생각이 나를 잡아 먹었다.

 

결론은,

1. 잘못은 그 사람에게 있으니 나를 자책하지 말것.

2. 그 사람에게는 내가 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것.

앞으로도 그 사람은 계속 그럴 것이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

3. 남이 어떤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말것

남의 생각을 내가 어찌할 수도 없고, 남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일이다.

내가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

 

내가 눈을 뜨면, 이 우주가 생기고,

내가 눈을 감으면(죽으면), 이 우주는 끝이 난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내 우주이고,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고,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중심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들 몫이고,

중요한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내가 만든 이 우주를 어떤 세상으로 만들것이냐는 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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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퇴근길에 로또를 2만원어치 사서
로또에 괴로운 일개미의 명운을 걸어볼 생각이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심윤경 - 교보문고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나의 아름다운 정원』『설이』 소설가 심윤경, 20년 만의 첫 에세이제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밥숟가락 뜨는 법도 잊어버린 할머니가 된 내가

product.kyobobook.co.kr

 

 

어린 시절

나는 집안의 첫 손주였다. 덕분에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이모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나름 똘똘했던 나는 온 가족의 사랑만큼이나 기대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는, 어른스럽고, 뭐든 잘 해내는 어린이였고,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자랑이었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항상 부족하고, 철없고, 열등했다.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매일 나를 꾸짖고, 비난했다. 나는 어떤 일을 아무리 잘 해내도, 만족할 수 없는 완벽주의자로 자랐다. 완벽주의자는 영원히 완벽해질 수 없는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고통 속에, 한동안 내가 완벽주의자가 된 것은 많은 부분 가족들의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으며, 그때 내가 받은 것이 기대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랑도 너무너무 넘치게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은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으며, 계속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할머니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글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자랐는데

나는 가족들의 많은 기대와 격려 속에 자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랑 속에 자라기도 했다.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소소한 오해와 불만은 시간 속에 잊혀지고 추억이 되지만, 깊어진 상처와 원망은 시간과 함께 괴물이 된다.’

이 말처럼 나는 내 상처를 키워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사랑

어린 시절 나는 집안의 첫 손녀로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밥벌이로 바쁜 부모님 덕분에 적당한 무관심속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이, 3 딸을 끝없이 모르는 척 해 준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는 지금도 항상 감사하는 부분이다.

너무 많은 사랑 속에 자란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알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다 모른다. 분명히 더 있을 테지만, 생각하면 아팠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할머니와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아는 작가가 부럽다.

 

 

돌아온 길

제일 부러웠던 부분은, 할머니께서 작가의 예민한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부분이다. 어린시절부터 나의 성격적 특성 중 한 부분은 항상 부정적이고, 고쳐야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간을 돌아돌아 와서야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제자리에 와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부모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렇지만, 돌아돌아 가는 이 길에 항상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이 있었다. 그 든든함으로 나는 그 먼 길을 돌아왔다. 그게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예전에 고꾸라졌을지도 모른다.

돌아돌아 온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라는 말에 100% 동의한다. 부모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다른 빈틈을 찾아서 상처받고, 또 거기서 자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았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이 책이 고맙다.

 

 

내 인생 감격의 순간들이라고 하니

뭔가 감동적이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뭐 그런 순간일 것 같은데

 

사실 내 감격의 순간은

엄청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서울에 내 집을 가지게 된 날 밤

우리 집은 내가 집을 떠날 때까지,

내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도

집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세를 들어 살았다.

 

대학을 오면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나는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살았다.

 

친척 언니의 반지하 방

고시원

기숙사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구석진 하숙방

그전보다는 조금 더 좋은 하숙방

햇빛 하나 안 들어 낮밤이 구분도 안 되는 지하 원룸

외풍으로 밖인지 안인지 구분 안됐던 내 첫 전셋집

처음으로 살게 된 신축 빌라 전셋집

회사가 가까워 가장 오래 살았던 내 마지막 전셋집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대출을 잔뜩 끼고,

아파트를 하나 사서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오던 날 밤.

 

이불속에 누워서

혼자 울었다.

고시원에 살던 때가 생각나고,

친척 언니에게 낑겨 살던 때가 생각나고,

어두운 지하방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지나온 모든 집들과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 작은 방에 누워 웅크린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차로 한강 대교를 건너던 밤

대학 생활은 즐거워야 할 것 같지만,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자주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에 잠기고,

울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엄마 같은 사람을 보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안쓰러워서 울기도 했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나 빼고 다들 풍요롭게 사는 것 같아서

울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는

내가 가족을 떠나와

이 낯선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제외한 이 풍요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내 것일 수 없고,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풍요로움.

 

회사를 다니며

뒤늦게 차를 한대 샀다.

그리고,

그 차로 한강대교를 지나며

새삼 내가 그때보던 그 풍요로움의 풍경 속에 있구나. 를 생각했다.

지하철에 앉아 있던 외롭고 힘들었던

20살의 내가 생각났다.

 

나에게  다시 한번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다음 감격의 순간은 언제 올까.

 

 

나는 여행이 너무 좋았다.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20대 때 나는 배낭메고 세계 일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다녀야 하고,

돈을 벌었어야 해서

떠나지 못했다.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일주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가까운 곳을 여행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설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설레는 일을 열심히 찾아 다닌다.

생각만 해도 하고 싶어서 미치겠는 일이 잘 없다.

20대때는 세계 여행이 그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사라졌다.

지금 당장 나는 세계 일주를 갈 수 있지만,

그 때, 20대 때,

너무너무 세계 일주를 원할 때만큼

지금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때 회사를 때려치고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그 때 잠시만 잘 참아내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니,

그것은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때만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던 순간을

그냥 보내버린 거였다.

그 때만큼 설레고 재미있는 시간은

이제 다시 오기 힘들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같은 것을 볼때, 대할 때,

설렘과 호기심과 기쁨이 그 때와는 다르다.

(물론, 그 때와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 또 있지만!)

설레는 일을 찾는 것은

날이 갈 수록 쉽지 않고

설레는 일을 찾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 설레임은 그 때뿐이므로

그 설레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바로!

제일 행복한 순간에!

내일은 이 행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내일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요즘 매일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엔 집구석이 최고야. 라며

집에 있다 보니

매일매일 집에만 있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왔는데

매일 매일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바깥세상은 열심히 굴러가고,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

버스를 타고,

쇼핑을 하고,

운전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비에 젖어 꿉꿉한 기분을 피해 집안에 있던 나는

뽀송하긴 하지만

무료하고

해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상은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친구와 아침가리계곡 트레킹을 갔다.

그냥 온몸이 젖을 생각을 하고 가는 트레킹.

길을 따라가다가 길이 끝나면 길을 찾아 계곡에 몸을 담궈 계곡을 건너는 트레킹.

신발, 옷, 머리까지 다 젖을 각오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트레킹을 했다.

물에 젖은 꿉꿉함.

물이 잘 마르는 옷으로 무장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꿉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애매하게 물에 젖기를 피하느라

발만 젖거나,

다리만 젖으면 10배는 꿉꿉했겠지만

그냥 내려놓고 물에 젖으니 너무너무 시원했다.

 

이제 비도 그렇게 맞기로 했다.

그냥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고 맞기로 했다.

운동화를 신고 젖어도 맞기로 했다.

집에 와서 말리고 갈아입으면 되는걸.

왜 나는 그게 두려웠을까.

 

나를 불편하고 꿉꿉하게 하는 비는

그냥 맞아버리고

그냥 나는 내 할 일을 하자.

 

뭐든

일단 해보면

내 두려움보다는

생각보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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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요가, 테니스, 수영, 볼링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시도해본 운동들이다.
어떤 건 몇 번하고 그만 두었고,
어떤 건 몇 년째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운동에는 정말 꽝이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나는 체육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나의 체력장 성적은 반에서 최하위였다.
달리기도 느렸고,
오래 달리기 마저 꼴등으로 들어오면서도
끝나면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이단 줄넘기도 하나도 못넘었고,
몸이 느려 피구를 해도 항상 제일 먼저 공격당했다.
이러니 뭐 체육 성적이 좋았을리 없다.
체육 실기는 항상 최하위였다.
노력을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하루 아침에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체육을 싫어하게 되었고,
난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운동을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30대의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정말 운동 신경이 없다는 것이고,
운동 신경이 없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운동선수로써 기록을 낼 것도 아닌데
체육 선생님들은 왜 내 운동 능력에 점수를 매겼을까?
체육시간에 내가 배워야 했던 것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체육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생 나와 함께할, 나에게 맞는 즐거운 체육활동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이단 줄넘기를 10개 뛰느냐, 1개 뛰느냐의 신체 능력은 하나도 중요한게 아니었는데,
학교 체육시간의 목표는 오로지 그것뿐이었고,
나는 그걸로 점수 매겨지고 줄세워졌다.

이젠
아무도 나를 점수 매기지 않고
아무도 줄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운동을 배울때마다
너무너무 신나고 행복하다.
비록, 비루한 운동신경으로
남들보다 2배의 노력, 2배의 시간이 들지만
그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2배로 시간을 들이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면 된다.
2배의 노력으로도 안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3배 더 하는거다.
이 악물고 말고 즐겁게.
지금은 아무도 나를 C라고 점수 매기고,
좌절해서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학창 시절의 체육 시간은 없느니만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즐거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수백번 망설이고, 피하게 만들었으니까.





체육 시간뿐 아니라
모든 학습에 점수 매겨지고 줄세워졌던
학교에서의 활동들은
다 비슷한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서 잘 하거나,
잘 못하는 것은 아예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내가 탄생했다.
경쟁에 최적화된 사회인으로 길러져서
종종 경쟁에 내 행복을 포기하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운동에서
줄세워지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나를 나대로 받아 들였을 때 느끼는 이 즐거움처럼
나의 일, 일상에서도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진짜 맞는 말.

 

본인은 별 생각없이 한 말이겠지만,

잡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가슴에 와 닿았던 말이다.

 

요즘은 너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고,

너무 많이 의미부여도 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노력중이다.

 

비슷한 말이 또 있지

 

고민보다 Go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보다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하게 살자.

 

 

 

 

현재 백신 접종 후 24시간째

 

남들은 두통, 무기력, 근육통 등등 다양하게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접종 부위를 누르면 좀 아픈 것 빼고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어제 저녁, 떨리는 마음으로 머리 맡에 타이레놀을 준비했는데....ㅋ

아플까봐 너무 걱정했는데 접종부위만 누르면 아프고,

두통, 열, 근육통 하나도 없이 멀쩡.

 

 

항체 잘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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