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이 너무 좋았다.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20대 때 나는 배낭메고 세계 일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다녀야 하고,

돈을 벌었어야 해서

떠나지 못했다.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일주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가까운 곳을 여행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설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설레는 일을 열심히 찾아 다닌다.

생각만 해도 하고 싶어서 미치겠는 일이 잘 없다.

20대때는 세계 여행이 그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사라졌다.

지금 당장 나는 세계 일주를 갈 수 있지만,

그 때, 20대 때,

너무너무 세계 일주를 원할 때만큼

지금은 재미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때 회사를 때려치고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그 때 잠시만 잘 참아내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니,

그것은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때만 할 수 있었던

최고의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던 순간을

그냥 보내버린 거였다.

그 때만큼 설레고 재미있는 시간은

이제 다시 오기 힘들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같은 것을 볼때, 대할 때,

설렘과 호기심과 기쁨이 그 때와는 다르다.

(물론, 그 때와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 또 있지만!)

설레는 일을 찾는 것은

날이 갈 수록 쉽지 않고

설레는 일을 찾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 설레임은 그 때뿐이므로

그 설레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바로!

제일 행복한 순간에!

내일은 이 행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내일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요즘 매일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엔 집구석이 최고야. 라며

집에 있다 보니

매일매일 집에만 있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왔는데

매일 매일 장대비가 내리는데도

바깥세상은 열심히 굴러가고,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출근을 하고,

버스를 타고,

쇼핑을 하고,

운전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비에 젖어 꿉꿉한 기분을 피해 집안에 있던 나는

뽀송하긴 하지만

무료하고

해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상은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친구와 아침가리계곡 트레킹을 갔다.

그냥 온몸이 젖을 생각을 하고 가는 트레킹.

길을 따라가다가 길이 끝나면 길을 찾아 계곡에 몸을 담궈 계곡을 건너는 트레킹.

신발, 옷, 머리까지 다 젖을 각오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트레킹을 했다.

물에 젖은 꿉꿉함.

물이 잘 마르는 옷으로 무장을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꿉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애매하게 물에 젖기를 피하느라

발만 젖거나,

다리만 젖으면 10배는 꿉꿉했겠지만

그냥 내려놓고 물에 젖으니 너무너무 시원했다.

 

이제 비도 그렇게 맞기로 했다.

그냥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고 맞기로 했다.

운동화를 신고 젖어도 맞기로 했다.

집에 와서 말리고 갈아입으면 되는걸.

왜 나는 그게 두려웠을까.

 

나를 불편하고 꿉꿉하게 하는 비는

그냥 맞아버리고

그냥 나는 내 할 일을 하자.

 

뭐든

일단 해보면

내 두려움보다는

생각보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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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요가, 테니스, 수영, 볼링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시도해본 운동들이다.
어떤 건 몇 번하고 그만 두었고,
어떤 건 몇 년째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운동에는 정말 꽝이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나는 체육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나의 체력장 성적은 반에서 최하위였다.
달리기도 느렸고,
오래 달리기 마저 꼴등으로 들어오면서도
끝나면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이단 줄넘기도 하나도 못넘었고,
몸이 느려 피구를 해도 항상 제일 먼저 공격당했다.
이러니 뭐 체육 성적이 좋았을리 없다.
체육 실기는 항상 최하위였다.
노력을 안해본 것도 아니지만,
하루 아침에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체육을 싫어하게 되었고,
난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운동을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30대의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정말 운동 신경이 없다는 것이고,
운동 신경이 없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운동선수로써 기록을 낼 것도 아닌데
체육 선생님들은 왜 내 운동 능력에 점수를 매겼을까?
체육시간에 내가 배워야 했던 것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체육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생 나와 함께할, 나에게 맞는 즐거운 체육활동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이단 줄넘기를 10개 뛰느냐, 1개 뛰느냐의 신체 능력은 하나도 중요한게 아니었는데,
학교 체육시간의 목표는 오로지 그것뿐이었고,
나는 그걸로 점수 매겨지고 줄세워졌다.

이젠
아무도 나를 점수 매기지 않고
아무도 줄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운동을 배울때마다
너무너무 신나고 행복하다.
비록, 비루한 운동신경으로
남들보다 2배의 노력, 2배의 시간이 들지만
그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2배로 시간을 들이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면 된다.
2배의 노력으로도 안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3배 더 하는거다.
이 악물고 말고 즐겁게.
지금은 아무도 나를 C라고 점수 매기고,
좌절해서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학창 시절의 체육 시간은 없느니만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즐거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수백번 망설이고, 피하게 만들었으니까.





체육 시간뿐 아니라
모든 학습에 점수 매겨지고 줄세워졌던
학교에서의 활동들은
다 비슷한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서 잘 하거나,
잘 못하는 것은 아예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내가 탄생했다.
경쟁에 최적화된 사회인으로 길러져서
종종 경쟁에 내 행복을 포기하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운동에서
줄세워지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나를 나대로 받아 들였을 때 느끼는 이 즐거움처럼
나의 일, 일상에서도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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