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감격의 순간들이라고 하니
뭔가 감동적이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뭐 그런 순간일 것 같은데
사실 내 감격의 순간은
엄청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서울에 내 집을 가지게 된 날 밤
우리 집은 내가 집을 떠날 때까지,
내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도
집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세를 들어 살았다.
대학을 오면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나는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살았다.
친척 언니의 반지하 방
고시원
기숙사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구석진 하숙방
그전보다는 조금 더 좋은 하숙방
햇빛 하나 안 들어 낮밤이 구분도 안 되는 지하 원룸
외풍으로 밖인지 안인지 구분 안됐던 내 첫 전셋집
처음으로 살게 된 신축 빌라 전셋집
회사가 가까워 가장 오래 살았던 내 마지막 전셋집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대출을 잔뜩 끼고,
아파트를 하나 사서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오던 날 밤.
이불속에 누워서
혼자 울었다.
고시원에 살던 때가 생각나고,
친척 언니에게 낑겨 살던 때가 생각나고,
어두운 지하방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지나온 모든 집들과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 작은 방에 누워 웅크린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차로 한강 대교를 건너던 밤
대학 생활은 즐거워야 할 것 같지만,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자주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에 잠기고,
울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엄마 같은 사람을 보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안쓰러워서 울기도 했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나 빼고 다들 풍요롭게 사는 것 같아서
울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는
내가 가족을 떠나와
이 낯선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제외한 이 풍요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내 것일 수 없고,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풍요로움.
회사를 다니며
뒤늦게 차를 한대 샀다.
그리고,
그 차로 한강대교를 지나며
새삼 내가 그때보던 그 풍요로움의 풍경 속에 있구나. 를 생각했다.
지하철에 앉아 있던 외롭고 힘들었던
20살의 내가 생각났다.
나에게 다시 한번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다음 감격의 순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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