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퇴근길에 로또를 2만원어치 사서
로또에 괴로운 일개미의 명운을 걸어볼 생각이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심윤경 - 교보문고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나의 아름다운 정원』『설이』 소설가 심윤경, 20년 만의 첫 에세이제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드립니다. “밥숟가락 뜨는 법도 잊어버린 할머니가 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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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집안의 첫 손주였다. 덕분에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이모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나름 똘똘했던 나는 온 가족의 사랑만큼이나 기대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는, 어른스럽고, 뭐든 잘 해내는 어린이였고,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자랑이었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항상 부족하고, 철없고, 열등했다.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매일 나를 꾸짖고, 비난했다. 나는 어떤 일을 아무리 잘 해내도, 만족할 수 없는 완벽주의자로 자랐다. 완벽주의자는 영원히 완벽해질 수 없는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고통 속에, 한동안 내가 완벽주의자가 된 것은 많은 부분 가족들의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으며, 그때 내가 받은 것이 기대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랑도 너무너무 넘치게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은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으며, 계속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할머니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글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자랐는데

나는 가족들의 많은 기대와 격려 속에 자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랑 속에 자라기도 했다.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소소한 오해와 불만은 시간 속에 잊혀지고 추억이 되지만, 깊어진 상처와 원망은 시간과 함께 괴물이 된다.’

이 말처럼 나는 내 상처를 키워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사랑

어린 시절 나는 집안의 첫 손녀로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밥벌이로 바쁜 부모님 덕분에 적당한 무관심속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특이, 3 딸을 끝없이 모르는 척 해 준 부모님의 사랑과 인내는 지금도 항상 감사하는 부분이다.

너무 많은 사랑 속에 자란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알지 못했고, 사실 지금도 다 모른다. 분명히 더 있을 테지만, 생각하면 아팠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 면에서 할머니와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아는 작가가 부럽다.

 

 

돌아온 길

제일 부러웠던 부분은, 할머니께서 작가의 예민한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부분이다. 어린시절부터 나의 성격적 특성 중 한 부분은 항상 부정적이고, 고쳐야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간을 돌아돌아 와서야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제자리에 와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부모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그렇지만, 돌아돌아 가는 이 길에 항상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이 있었다. 그 든든함으로 나는 그 먼 길을 돌아왔다. 그게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예전에 고꾸라졌을지도 모른다.

돌아돌아 온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라는 말에 100% 동의한다. 부모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다른 빈틈을 찾아서 상처받고, 또 거기서 자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았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이 책이 고맙다.

 

 

내 인생 감격의 순간들이라고 하니

뭔가 감동적이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뭐 그런 순간일 것 같은데

 

사실 내 감격의 순간은

엄청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서울에 내 집을 가지게 된 날 밤

우리 집은 내가 집을 떠날 때까지,

내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도

집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세를 들어 살았다.

 

대학을 오면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나는 이리저리 많이 옮겨 다니며 살았다.

 

친척 언니의 반지하 방

고시원

기숙사

겨우 몸만 뉘일 수 있는 구석진 하숙방

그전보다는 조금 더 좋은 하숙방

햇빛 하나 안 들어 낮밤이 구분도 안 되는 지하 원룸

외풍으로 밖인지 안인지 구분 안됐던 내 첫 전셋집

처음으로 살게 된 신축 빌라 전셋집

회사가 가까워 가장 오래 살았던 내 마지막 전셋집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대출을 잔뜩 끼고,

아파트를 하나 사서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오던 날 밤.

 

이불속에 누워서

혼자 울었다.

고시원에 살던 때가 생각나고,

친척 언니에게 낑겨 살던 때가 생각나고,

어두운 지하방에 살던 때가 생각났다.

지나온 모든 집들과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 작은 방에 누워 웅크린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날 밤의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차로 한강 대교를 건너던 밤

대학 생활은 즐거워야 할 것 같지만,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자주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에 잠기고,

울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엄마 같은 사람을 보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안쓰러워서 울기도 했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나 빼고 다들 풍요롭게 사는 것 같아서

울기도 했다.

 

특히,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는

내가 가족을 떠나와

이 낯선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제외한 이 풍요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내 것일 수 없고,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풍요로움.

 

회사를 다니며

뒤늦게 차를 한대 샀다.

그리고,

그 차로 한강대교를 지나며

새삼 내가 그때보던 그 풍요로움의 풍경 속에 있구나. 를 생각했다.

지하철에 앉아 있던 외롭고 힘들었던

20살의 내가 생각났다.

 

나에게  다시 한번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다음 감격의 순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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